4. 엄마야 누나야 강변에 살자
  
4. 엄마야 누나야 강변에 살자

  흔히들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교육이라는 이론과 의식에 매료되어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은 오히려 더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인증되어 왔던 경험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다.

  특히 태교는 어떤 이론 교육으로써 보다는 오랜 인간의 역사적 경험과, 현실적으로 체감하면서 삶을 이끌어 온 할머니들과 엄마들에 의해 신념과 믿음 있는 교육으로, 딸들에게 자연스럽게 들려주면서 가르쳐지고 이해되어 자리 잡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학교나 사회가 중심이 될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 태교에 대한 나의 확고한 견해이다.

  물론 학교와 사회가 그 연장선상에서 함께 노력하고 정보를 제공하면서 연구하는 공동체의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생명의 잉태에서는 무엇보다도 바른 의식과 사상의 가르침에 따른 윤리적이고 순결한 생활 바탕이 가장 참된 조건이다. 어떤 행위이든 반드시 다음의 다른 행위를 발생시키며, 연속된다는 섭리를 더듬어 볼 때 그것들은 미묘한 관계에 얽혀서 생성이 엮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임신의 세 가지 조건 중에서,

  첫째 조건은 어머니가 될 여성의 건강이 적절한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에서 건강이라 하니 종합병원의 건강 진단서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임신 조건에서 건강이란 바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 하는 의문과 질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었지만 지금까지 정의된 결론으로는 그 으뜸을 하나의 단어와 언어로써 표현한다면 ‘순결’이다.

  이 윤리적인 가치 기준에서 모든 현실을 보고 평가하는 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태교에서는 말이다. 아무리 오늘이라는 역사적인 현실에서 그것과 타협한다고 하더라도 이 원리적인 기준만은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새삼스럽지 않고 보편적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우리 주변의 상황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피임약이나 그 기구를 사용하는 것.’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 나라는 인구정책이 보다 빠른 기간 안에 성공한 나라라는 것과, 오랜 사회적인 윤리성과 인습 등 복합적인 국민인식에 대한 연구와 선행되어야 할 교육이 뒷받침되지 못함으로 해서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여성들의 배란 주기를 이용하여 임신을 회피하는 자연 금욕법에 의한 피임 방법 이외의 모든 피임법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행위임을 먼저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피임을 단지 현대의학이 가져다 준 인간승리의 행복인줄로만 알고 받아들이지 말고, 그래도 여성이라면 자기 몸의 구조를 한번쯤 살펴봐야 할 과제들이 있는 법이다.

  이러한 문제 발생의 원인은 국가나 사회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엄마의 책임이다. 그것은 또한 엄마의 역량부족을 증명하는 ‘어머니 교육의 빈약함 내지 없음’을 일러주는 가정구조의 문제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먼저 예를 하나 들어서 말해본다면, 경제적인 기반을 좀 마련한 후에 아기를 갖겠다고 상당한 기간 동안 피임을 하고 있는 젊은 부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한 경우 아기를 갖고자 피임을 해제해도 임신이 안 되어서 고민하고 우왕좌왕하며 애틋한 감정에 빠진 아쉬운 삶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여성들이 자신은 임신을 원하지만 정작 임신이 되지 않을 때 겪는 그 감정적인 충격의 파장은 그 본인이 아니고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딸을 가진 부모는 근심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경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우리 몸은 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밖의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는 자기보호의 대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학도 임상실험을 통해서 일찍부터 확인한 바이다. 가장 예민한 조화인 신진대사의 흐름을 깨트려 놓고서 몸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고 따라올 것으로 믿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피임을 해제한 후에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서 우리 몸이 스스로의 복원력에 의해서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온 후에야 임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것도 연령적인 차이라든지 신체적 특징 등 다양한 이유로 해서 개인적으로 상당한 격차를 보이게 마련이며 어떤 경우에는 불행하게도 잠시 동안의 피임이 불임의 원인으로 끝날 수도 있는 법이다.

  여성들이 자기 몸을 관리할 때 너무 차게 해도 불임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여성들은 냉(冷)병을 무척 경계했었던 것이다. 지금은 결혼 연령이 차츰 고령화 현상을 나타내므로 더욱 그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여성들이 첫 출산 전부터 피임약을 쓰거나 혹은 낙태수술을 하게 되면 윤리성과 도덕성에 있어서 친자 상해라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사실은 뒤로 미뤄 두고라도, 그렇게 하면 곧 여성으로서 부여받은 고유한 임신 능력을 상실할 확률이 더 한층 높아진다는 사실을 어머니에 의해서 일찍부터 가르쳐져야 한다.

  이것 또한 성 개방 풍조에 따른 부작용이라고만 탓할 것이 아니라 여성교육과 의식 문제 전반에 걸쳐 자기 보호의 문제를 유아기 때부터 바르게 가르쳐지고 교육되어야 할 ‘딸에 대한 어머니 교육’이라는 사실을 다시 강조한다.

  창호지에 비친 달빛의 교교함이 넘칠 때, 다른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포근하고 행복한 꿈에 젖어 있는데 잠 못 이루고 시름에 젖어 있는 사람의 애절함을 한번쯤 생각해 봤을 때, 건강하고 활력이 있을 때를 더욱 소중하게 관리해야함을 왜 몰랐을까.

  두 번째 임신의 조건은 ‘부모가 될 두 사람의 원만하고 덕스러운 애정’이다.

  이 대목은 당연한 논리라서 더 강조하고 싶지 않지만, 남성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자녀 교육을 위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 좀 언급을 하고 싶다. 원만한 애정이라 해서 신혼 때처럼 무조건적으로 희희낙락하는 그런 정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대목은 이야기를 전개하려면 굉장히 폭이 넓고 깊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양쪽 모두에게 ‘순결성’이라는 가치관에서 평점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의식 수준이나 환경과, 사명감 그리고 행위라는 습관적인 문제까지 함께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똑같은 위치와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서 부인 못지않게 정성과 노력을 다해 태교를 위해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서로 사랑하고 불만이 없는 부부에 비해서 서로를 적대시하는 부부에게서 정신적, 육체적인 장애자가 태어날 확률이 2.5배 높다’고 하는 한 서양 의사의 연구 보고서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 당연한 인과의 귀결점이다.

  현대의학도, 아버지가 될 사람들의 부도덕한 행위나 생활환경이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를 많이 제시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유산·사산·조산아·기형아 등의 출산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장차 아버지가 될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서 지금까지의 자만심 같은 폭력적인 인습에 젖어, 태아의 건강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만 주어진 의무인양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시정하여 함께 노력하고 책임져야 한다.

  담배 하나만 예를 들어봐도 그렇다. 입태 전후에 흡연 아버지들은 비흡연 아버지들에 비해서 백혈병 어린이를 출산할 가능성이 40% 더 높다는 확률이 1979년부터 1983년 사이에 미국 덴버시 어린이 대상의 조사 자료에서 나타났다는 한 의료보고서가 있다.

  그리고 과음하는 아버지들도 체중 미달아를 출산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실례들이 많다. 내 의도와는 달리 괜히 공포심만 조장할까봐 이만 줄인다.

  결론적으로 한마디 더 보탠다면 남성들도 자신의 정자(精子)를 건강한 정자로 잘 보호하고 지켜야 할 책임이 분명히 있으므로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들에게 전가하려는 의도를 버리고 몸가짐에 조심하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선조들의 기록에서 하나 발췌해 본다면, 18세기 말 실학자 유희(柳僖) 선생의 어머니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가 지은 『태교신기(台敎新記)』에서 한 구절을 옮기고 싶다.

  “아버지는 태어나게 하고, 어머니는 기르고, 스승이 가르치는 것은 모두 한가지의 일이다. 명의는 병이 나기 전에 다스리고, 잘 가르치는 자는 태어나기 전에 가르친다. 고로 스승의 10년 가르침보다는 어머니의 태교 10달이 낫고, 어머니의 태교 10달보다 아버지의 수정 당일의 심신 상태가 더욱 중요하다.”

  애정이라 해서 연애시절처럼 뜨거운 감정의 흐름만은 항시 상대에게 요구할 게 아니라 서로의 신진대사의 가락이 다르다는 사실과 자제함과 협조함에 있어서 그래도 미리부터 알아야 할 것은 알고 있어야 한다.

  간단한 예로 옛 어른들께서 천둥치는 날은 부부관계를 피하라고 하신 말씀은 태교의 주의사항으로 들어 있는 가르침이다. 자신들의 몸의 기능이 언제나 한결같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애정이 있다하여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을 너무 무시하거나 혹은 외부에서 오는 조건을 무조건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도 고려해서 받아들여야 할 때가 많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항시 어머니 교육이란 말을 많이 쓰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하나 하나 꼭 이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더라도 어머니가 옛 이야기처럼 자상하게 들려주시는 인간과 사물을 살피는 가르침은 그만큼 자식들에게 큰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한의사의 경우이다. 그분이 젊은 시절 어느 한때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일이 있어서 어느 절에 가서 3개월 간 휴양을 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날도 그렇게 몸의 상태와 기분이 안 좋아서 혼자 쉬고 싶었는데, 부인의 강한 요구에 며칠만 기다려 달라는 자신의 의지가 꺾이고 말았다.

  그 날 밤의 부부관계가 그대로 임신이 되어서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저능아이다. 그 부부는 지금까지도, 특히 부인은 그 딸을 바라볼 때마다, “아이구! 그 날 밤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하고 탄식한다고 한다.

  ‘그때는 옛날’ 이 말은 어느 대중가요의 제목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체험적인 비밀스런 고백일 수도 있다.

  이러한 옛 어른들의 경험이 삶의 지혜가 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요즈음도 어느 달에 임신하여 어느 달에 출산하면 좋다하여 그런 시도를 하는 부부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정성이나 생활태도를 존중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피임이나 다른 부정적인 행위를 해서 자연적인 조건을 어기면서 행하는 경우를 나는 절대로 반대한다. 운명을 일시적인 곡예로 바꾸고 보면 더 크고 복잡한 곡예가 또 자기 앞에 닥쳐오게 됨을 믿고 알아야 한다.

  정말이지 운명이 일시적인 곡예로 개선될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더불어 한순간의 실수도 한순간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하나, 오늘날 우리나라가 국가적인 어려운 현실과 정책으로 봉착하고 있는 저출산의 문제 해결의 고민 속에는 점점 늦어지는 결혼연령의 상승과 너무 많은 숫자의 불임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있음을 우리가 무심하게 넘어가서야 될 사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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