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오늘부터 고모님으로 모실게요
어머니 오늘부터 고모님으로 모실게요

  나는 가끔 손님들을 만나 대화를 하는 중에 '힘들다고 신세타령 하지말고 셋째나 낳아. 그러면 팔자가 좋아지지. 지금 같은 저출산 시대에다 낙태가 보편화된 듯한 흐름을 타는 이런 시대는 하나 더 낳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복 덩어리인지 몰라. 셋째 낳고 잘 못 되는 사람 봤어?' 라는 농담조의 말을 곧잘 한다.
  그러나 그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종교적인 출가자가 아니라 해도 윤리적인 실수가 없는 독신생활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은 분명 우주 본래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이라 하늘이나 인간세상에서 축복 받을 사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하면서 인위적으로 출산을 너무 제한하면 이것은 분명 과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연을 정리하면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위의 말은 내가 자주 하는 말이라 한번 던져 본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정년이 가까운 고등학교 여선생님이 한 분 있다. 그 선생님께서 결혼 후 이 시대의 보편적인 사회의 흐름을 그대로 답습하듯 남매를 낳고서는 더 낳을 생각은 접고 살았는데 어느 해 갑자기 그렇게 셋째를 낳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더라는 것이다. 그런 간절한 의식이 자신을 지배하면서 한 인연이 나에게 태어나려고 지금 나에게 간절한 메시지를 주고 있구나 하는 이런 영감이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 자신은 신심 있는 불자였고 기도나 정진을 그 나름대로 열심히 하시는 분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잘 못 오해하면 상당히 삿 된 내용이 될 수가 있다. 또 그 본인의 삿 된 생각이거나 어리석은 심정이 잘못 영상화되어 그런 실수를 낳을 수도 있음은 사실이다. 우리가 그 분의 정신적인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정진력이 없으면 사실 그런 것이 오히려 정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 셋째를 갖고 싶은 소망을 이야기했더니 첫 마디에 '무슨 소리냐?' 고 하면서 강한 반대를 하는 통에 몇 번 반복된 설득이 끝내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본인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져서 '저렇게 문을 두드리고 있는 놈을 버리다니. 안 돼.?!' 하는 이런 불편한 갈등이 몇 달을 지속했다.

  사실 이런 경우의 일은 꼭 종교적이라고 할 것도 없고 드물기는 하지만 어머니들에게 들어보면 그런 기분이나 영감을 느껴 볼 때가 있었다는 자신의 경험담들을 말씀하시곤 한다.
  그 때 손아래 올케 한 사람이 같은 도시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는데 결혼 후 임신이 안 돼서 산부인과와 한의원을 다니면서 계속 진료와 처치를 받았지만 내외가 모두 이상은 없다고 하는데 임신이 안 되니 상당히 초조하고 안타까운 그런 처지였다고 한다.

  서로 자주 만나 대화를 하다보니, 이 선생님의 심정이나 사정을 그 올케 내외도 알게 되었고 자기들끼리 '한쪽은 하나 더 낳으려고 안달이고 한쪽은 하나도 없어서 안달이고 세상 참 불공평하다'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했다는 것이다.
  이 선생님께서 어떻게 남편을 한번 더 설득해볼까 하고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중에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그 올케가 뜻밖에 그렇게 기다리든 임신이 됐다.
  시누이로부터 기쁜 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아, 내 아이가 올케한테 갔구나?!' 하는 이런 생각이 흐르면서 기쁜 감정 속에서도 참 괜찮은 아이인데 하는 일종의 섭섭한 의식이 스치면서 셋째를 가져야겠다는 의식이 일시에 싹 가셔버리면서 갈등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더라는 것이다.  

  임신 중에도 시누이와 올케가 서로 만나면 한번씩 '이 아기 고모 애가 틀림없어. 내가 잘 길러줄게요. 그래 잘 길러야지' 이런 대화를 서로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모범적인 고등학생이 된 그 올케의 아들은 이 선생님이 예상한 그대로 젖먹이 때부터 이 고모만 보면 그렇게 좋아하는 아기의 표정을 쉽게 느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오히려 엄마 아빠 보다 고모를 훨씬 더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이 선생님 역시 내 조카라는 생각이 없고 그대로 '우리 아들' 하는 이 감정뿐이고 그렇게 정이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발생적으로 간절한 바램으로 만난 인연들은 아무래도 인간적인 덕성이 더 우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지금도 이 선생님의 가슴을 한번씩 아리게 하고 과거로 돌아가 깊은 우수에 젖게 하는 쓰리고 쓰린 회상이 있다는 사실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 내가 셋째를 갖고 싶은 소망에 빠졌을 그 때, 나는 내 운명을 미리 예시하고 그것을 막으려고 했었던 것이 아닐까? 그 때 저 조카가 나에게 태어났다면 먼저 가버린 ♣♣도 잃지 않았을 것인데?'
  그 후 이 선생님은 교통사고로 장남을 잃었고 결국 셋째인 지금의 장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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