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태몽이야기 하나
  지금 소개하는 태몽이야기는 내가 들어본 태몽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했고 깊은 인상을 남겼던 내용이고 또 “은혜로운 만남을 위한 태교(1990, 도서출판 답게)”에 한 내용으로 생각하다가 싣지 않았다.

  지금부터 무려 100 여년 전 일이라 태몽을 경험하신 어머님께 직접 들은 사정이 아니라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그 분 손녀 중 한분한테서 전해 들었다.
  그 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양이 고향이시고 또 그곳에서 살아오신 분들이시며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화되신 가정이셨던 것 같다. 할머니의 친정아버지는 우리나라 개신교 초기 개척교회사를 읽으면 쉽게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목사님이라는 사실과 할아버지 또한 독실한 기독교 가정 출신으로서 맺어진 부부였다.  
  9남매를 출산하셨고, 그 분들의 손녀 한 분이 내게 자신의 큰 아버지 태몽이야기를 옛 이야기처럼 들려준 것이다.  

  그 태몽 내용인즉, 그 할머니께서 자기 집을 나와서 제법 넓은 들판 길을 가로 질러서 어느 산기슭으로 들어가니 조용하고 아담한 암자가 있었고 그 암자에서 가사 장삼을 단정히 차려입은 중년에 가까운 젊은 스님 한 분이 나오셔서 자기를 따라 와서는 당신의 집으로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그 꿈이 장남의 태몽이었고,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독교적인 가르침과 사상으로 교육받으면서 자란 착한 그 분으로서는 그 태몽이 한 묶음의 강한 인상이 되어 마음속에 깊이 관상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사정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장남은 자기 스스로 문밖을 한번도 못나가 본 ‘앉은뱅이’였다. 원래 부모는 무엇이 하나가 부족한 자식에게 더 애정의 골이 깊어지고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더 간절한 사랑으로 매달리게 되듯이 계속해서 차남 등 자녀들이 태어났지만 그 분들은 간절한 사랑과 기도로써 지극한 보살핌을 일관하셨다.  

  그러한 세월이 흘러 16살 때 그 장남을 보내게 되었다. 자식 잃은 슬픈 애환으로 가득한 정적이 흐르던 그 날 밤, 그 어머님께서 지쳐 깜빡 새우잠이 들어 그 아들의 태몽을 다시 보신 것이다.
  이번에는 티끌만치도 달라진 것 없이 그 스님이 자기 집을 나와서 온 그 길을 따라 들판을 가로 질러서 그 산 기슭의 그 암자로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태몽에서는 그 스님이 자기를 따라서 자기 집으로 들어왔고 죽은 뒤에는 반대로 자신이 그 스님을 따라 나갔던 쉽게 잊을 수가 없는 묘한 영상이 되어버렸다.

  결국은 그 가정은 자신들의 정신적인 삶의 전부이기도 했던 당신의 종교를 뒤로 하고 다른 종교를 받아 들여 정결한 삶을 지속하셨고, 그 가문의 권속들은 지금도 모범적인 재가 신도 가정으로서 살고 있는 분들이시다.  
  지금은 작고하신 어른이시지만, 오래도록 진통을 겪어오던 ‘부처님 오신 날’이 공휴일로 제정될 때(1975) 내각의 한 주무 장관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특히 법조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큰 공로를 남기신 한 분이 그 분의 차남이셨다.

  이 태몽이야기를 처음 들을 때 내가 글을 쓸 때 인용 하겠다고 양해는 구했지만, 이미 20년 전의 일이고 해서 실명은 밝히지 않을 뿐이다. 물론 지금도 그 분들과 교류가 지속되고 있다.                                  
선우
태몽이라는것이 참으로 기이한현상으로 신령스럽게 받아집니다.
2009/09/10  
이시형
좋은 글 감사합니다. 꿈은 렘수면 상태에서 꾼다고 합니다. 꿈을 꾸는데 여러가지 이론이 있지만 하나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소위 개꿈이라는 것이고 하나는 현실과 부합하는 맞는 꿈이라는 것이지요 이 중 후자는 영혼체나 텔레파시 등의 교감에 의해서 꾸어진다고 하네요. 합장
201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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