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가슴속에 담겨진,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말을 끝내면서 저의 어머니 이야기를 빠뜨려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됨은, 이 글은 결코 어머니를 떠나서는 시작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님! 그 분의 의미를 빼버리면 제가 지금까지 한 말은 무기력한 것이 될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이 글을 쓴 의미를 함축하고 부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책 내용 중에도 저의 어머니〔강태경(康泰景, 法名 大蓮華)〕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옮겼습니다. 물론 그 분은 학교 문턱에도 안 가보신 분이시고, 어떤 뚜렷한 사상이나 이념을 갖고 계셨던 분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 분 여인일 뿐입니다.
당신은 아들을 하나라도 더 기다리는 4대 독자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셨습니다. 출생 환경도 그렇지만 19살 때 종가 집 장손인 두 살 위의 저의 아버지에게 시집오셨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연세가 38세였으니,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아이를 출산하여 기르던 시절을 사신 분입니다. 그렇게 앞서의 우리 시대를 그저 평범하게 살아오신 분으로, 자식을 통해서 당신의 세속적인 행복을 성취하고자 하신 그런 어머니 가운데 한 분이셨습니다.
글 내용 중의 설명처럼 당신께서 어린 시절 저에게 보여주신 평범하고 강한 인상 몇 가지가 저로 하여금 태교에 대한 깊은 관심과 어떤 실천적인 노력을 하도록 이끌어주신 원천이었기에, 그것을 꼭 밝힘으로써 그분께 진정 감사함을 전해 올리고자 합니다.
그분은 어떤 뚜렷한 이론 체계나 전문적인 앎은 없었지만, 어린 시절에 들어본 어른들의 말씀을 무척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우신 당신의 입지를 매우 강하게 지킨 분이시기도 합니다.
저를 임신하셨을 때 그분과 저와의 대화인 태 중 교감을 소중히 여기셔서, 그때 저를 바라보고 저에 대한 남다른 보살핌으로, 저의 개성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큰 집안의 종가 집 장손인 저를 처음부터 당신 곁에 남아 있지 않을 자식으로 살펴 인정하신 사실은, 보편적인 세속의 어머니들의 생각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기도 했습니다.
저를 임신하셨을 때 당신이 느끼셨던 저의 개성을 처음부터 인정해 주시고, 극히 어려운 운명적인 순간에서도 주저하지 않으시고, 처음 뜻 그대로 밀어주신 결정을 저는 언제나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신앙적인 어떤 의미를 갖고 계시거나 출가라는 그런 어떤 테두리를 음미해 보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당신 곁에 남아 있지 않을 별난 자식이라는, 어머니 당신으로서의 강한 태 중 교감을 그대로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의해, 당신 마음속으로 내린 저에 대한 결정을 그대로 수용 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아버지가 갑자기 운명하신지 6년 만에, 가문을 지켜야 할 장손인 제가 1년 이상 미루던 출가 결정을 말씀드렸을 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는, 얼굴색 하나 흐트러지지 않으시고,
“훌륭한 도인이 되거라” 그 한 말씀만을 하셨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저를 향한 회유 의지를 어머니 당신이 차단하심으로써, 저는 출가에 따른 환경적인 장애 요소들을 쉽게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20년 동안을 제 어머니는 저의 중노릇에 있어 크나 큰 후원자 자리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항상 마음 든든한 가운데 저 나름대로 우리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웃에 대한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어머님이 제게 보여주신 그 사랑에 점점 매료되곤 했습니다. 제가 태교에 관심 갖고 살핌으로써 우리 사회와 국가에 조금이나마 헌신하겠다는 소신을 간직하고 있음은, 어머니 그분을 바라보는 나의 연민이기도 한 것입니다.
재작년(1993년) 겨울 저는 25일 일정으로 남부 인도 여행을 했습니다. 그때 인도 최남단에 위치한 인도인들에게도 성산으로 추앙되는 관음성지 보타산(Potikai)정상이 바로 쳐다보이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호반에 자리 잡은 한 아쉬람(Ashram)에서 2주간 일정으로 미리 예약하고 갔던 한 과정을 연수하던 그 마지막 전날인 지난해 1월1일 우리 어머니는 73세를 일기로 운명하셨습니다.
그 해 가을, 건강이 기울어지고 있음을 잠깐 보아야 했지만 퇴원하신 후 건강이 웬만큼 회복되셨고, 그렇게 쉽게 가시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모자식 지간인 당신과 나와의 너무도 잘 유지된 관계에서, 나 자신을 너무 믿어버린 어리석음, 그리고 언제나 건강하셔서 내 곁을 지켜주시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결과적으로는 그분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나마도 10일 후인 귀국 중에 그분의 가심을 알게 되었으니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영정 앞에 섰을 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눈물은 다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의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눈물에는 슬픔과 기쁨의 눈물만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눈물도 변명의 눈물이 있음을 생애 처음으로 강하게 한번 경험한 것입니다.
제가 인도에 다녀오겠다고 전화를 드렸을 때는 전혀 내색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알고 보니 당신은, 한 달 전부터 주변에 안부 전화를 다 하시고 작은 것들이지만 당신과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깨끗이 정리하셨고, 운명하시기 20일 전인 동짓날 초하루 법회에 나오셔서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시면서 섣달 회비까지 미리 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정리된 당신 짐과 수의 보따리를 며느리에게 일러주시고, 그 이튿날은 가위로 당신 손으로 긴 머리칼을 짧게 단발머리로 자르셨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태어날 때 가지고 오지 않았던 의치(義齒) 몇 개마저 빼버리시고는, 동짓날인 그 이튿날 입원을 재촉하셨다고 합니다.
집안사람들 안부까지도 일일이 다 챙기면서도, 입원 3일 만에 “내가 스님 귀국 때까지는 못 기다리겠다” 는 말씀 외에는, 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셨다고 합니다.
끝까지 염불하시면서 맑고 편안하신 모습을 보이셔서, 주위에 마음 고생으로 어렵게 임종을 기다리는 다른 보호자들에게, 많은 부러움을 사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운명하신 후에는 그렇게 춥던 날씨가 풀려 봄날 같았고, 또 큰 주방시설까지 딸린 넓은 영안실을 얻게 되어 솥을 여러 개 걸어 놓고 따뜻한 음식을 푸짐하게 조문객들에게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생전에도 그랬듯이,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보여주신 가풍을 마지막까지 보여주신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죽음에 대해서 언제나 편안하게 받아들이셨고, 저와 미리부터 그 문제는 충분히 논의를 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한줌 재로 변한 당신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그저 세속적인 행복론에 치우치지 않으시고 당신 스스로 마음속으로 한번 내린 결정은 끝까지 지켜나가는 분이셨기에, 장례 의식을 집전한 스님들에 의해 습득된 당신의 사리 12과를 대했을 때, 정말 당황했고 가슴 저 밑바닥이 뜨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법을 소홀히 할 수 없고, 또 장로 스님들이 증명하신 바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마저도 없어서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것은 사리가 아니라 그분 나름대로 뜻을 갖고 한 생을 애써 살아오신 ‘어머니 정신’ 의 결정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그분은 끝까지 출가한 당신 아들을 욕되게 하거나 장애하지 않으시려는 서원이 분명하셨음은 평소 말씀과 같이, 가시는 과정에서도 더욱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정말 값지고 강한 힘이라고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줌 재를 수습하든 그 서글픈 시간과 자리에서, 조문객들과 신도님들에게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로, 감격의 열기가 넘쳤다고 하니, 저로서는 큰 위안이 됩니다.
나 같이 덕 없는 사람이 글을 써서, 이 글이 얼마나 이웃에 기여할까 하는 생각은, 그저 인연법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그분께서’ 보여 주신 강한 영감은 저에게 항시 태교에 관심 갖고 함께 노력하겠다는, 저 개인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기에, 나의 어머니 소개를 실으면서 어머니 그분의 애정 어린 모성과 영향력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지난해 6월 1일 백두산 정상 중의 한 봉우리인 천문봉에 올라 그때까지도 눈 덮인 얼음에 덮여 있는 천지에 어머니 사리 1과를 봉헌하면서 큰소리로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그 부름은, 단지 저의 어머니만을 추모하는 외침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배달민족의 후예인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에게, 저의 애원과 청원을 올렸던 것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희망, 나의 조국-’ 바로 그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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