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 때가 정말 좋았구나
우리 여성들이 좀더 섬세하게 관심 있는 노력을 태교 정신에서 발휘해 준다면, 우리 한 세대로서 몇 백 년 병들고 굳어진 그늘진 기운을 보다 쉽게 청산하고서, 다시 튼튼한 국민 기상과 윤리성의 기틀을 쉽게 갖추게 되어, 쉽게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 된다. 그렇지만 자각증상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이때를 당하여 한 번 더 살펴 명심할 것은,
‘서두르지 말고, 달아오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서두르지 않고 순서대로 원리대로 밟아 나가는 것이 이기는 길이며 최상의 방법인 것이다.
내가 20대 초반 한 때,「서두르지도 말고 쉬지도 마오」라는 제목의 괴테의 시 한편이 너무 좋아서 벽에 붙여 놓고 여러 달을 애송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시의 구절처럼, ‘서두르지도 말고 쉬지도 않으면서……’내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제법 다짐도 했었다. 그 때로부터 50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의 가슴속은 스스로 부끄러운 양심으로만 꽉 차 있을 뿐이다. 역시 나는 그때의 다짐을 잊어버리고 너무 조급했었던 사실을 변명할 수가 없게 됐다. ‘언제 기초를 닦아? 시간이 없어서 안 돼. 뭐 이 정도야 그냥 넘어가도 돼’ 이런 식으러 서두르기만 했고, 조급한 마음을 조금도 늦추지를 못했다.
그렇게 살아온 지금 나는 ‘과연 나이 칠십 대에 어디에 와 있으며,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이 있는가’ 하는 깊은 회의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고백할 뿐이다.
비록 이 시대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이건, 경전의 말씀대로 남자를 사로잡는데 있어서는 여자의 힘을 당할 것이 없고, 여자를 사로잡는데 있어서는 남자의 힘을 당할 것이 없다.
그리고 ‘엄마의 애정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없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교육 정신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빠알리어 경전에 이런 말씀이 있다.
두 아들을 얻은 젊은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여자로 전변하여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또 두 아들을 낳았는데, 어느 날 다시 남자로 전변하여 얼마 후 출가하여 애써 수행을 잘하여 대덕 비구가 되어서도 가끔 한 번 씩 자신의 네 아들을 회상하는 때가 있었다.
한 제자 되는 비구가 묻기를 엄마로서 얻은 두 아들과 아버지로서 얻은 두 아들 중에서 어느 쪽 아들에게 더 정이 가는 지를, 아니면 똑 같은지를 여쭙게 된다.
그 대답은 역시 어머니로서 얻은 두 아들에게 정이 더 간다는 대답을 했다. 설령 설화의 내용이라 해도 그 애정의 진실성은 부인할 수가 없겠다.
엄마들이 자만심에 넘쳐 경망하고 단순한 편벽성 같은 이런 문제의식의 인식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나 서원은 처음 만남의 때를 놓치지 않고 자기의식 속에 채워간다면 의외로 쉽게 크게 뛰어넘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교육에는 당연히 원리성과 기능성이 있게 마련이다. 거기에다 환경에 의한 역사성을 살핀 바 없다면, 그 중심을 유지하기 어렵고 딱 구분 짓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원리성을 상실하면 그야말로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나무덩치와 같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가장 고귀한 이성적인 정신력과 창의력을 성숙시키지 못한다면 선진국 국민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흔히들 ‘잘 가르친다’느니 ‘잘 기른다’는 말로써 왕성하고 애정이 넘치는 인생의 의욕과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살아가야 할 순서와 내용은 잘 기르고 가르친(태교)다음 낳아서 잘 기르고 가르친다는 이 순차적 원리성을 무시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란 어느 개인이나 소수 집단만이 책임질 성격이 아니므로 ‘우리’라는 전체 사회 대중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가 해결해주겠는가. 물론 덕 있는 스승이나 지도자가 있으면 좀 더 방향을 잡기가 쉬울 뿐이다.
자기 운명을 다른 사람이 바꿔 주지는 못하는 법이다.
누구보다도 우리 어머니들이 ‘우리 자식들’, 다음 세대만은 멋지게 창조해야겠다는 발원(發願)으로 뜻과 힘을 모아서 결정적인 생각의 의욕적인 노력을 경주할 때만이 동쪽 하늘이 밝아오는 것이다.
절대로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이 아니다.
‘신성한 아내는 참으로 나라의 길잡이 이니라’ 라는 이 경전의 말씀에 어찌 무심할 수 있을 것인가.
밤이 깊었나 보다.
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큰 기쁨이 실려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이 시간에 이르러 지금 말을 마무리 지으려 하니, 큰 일 앞에서는 침묵하라는 가르침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가 되는듯하다. 그리고 편안한 기분이다. 그런데 꼭 들려주고 싶은 한 기억이 내게 숨어있다.
이것은 어느 글에서 읽어 얻은 것도 아니며 어느 누구에게서 얻어들은 말이나 이야기도 아니요, 내가 지어낸 이야기도 아닌, 내 삶의 체험으로 얻은 순수한 나의 경험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내가 해군에서 3년 간 복무를 마무리 지어가던, 제대 두 달을 앞두고 ‘1․21 무장공비 청와대 기습 사건’이 겨우 저지되는 사태가 발발하여 제대가 3개월 연장되었다. 그 충격에 크게 놀란 정부는 예비군 창설과 더불어 정규적인, 비교적 강도가 높은 예비군 훈련이 실시되어 제대와 더불어 바로 그 연장선상에 놓인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내가 그런 국가관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때로는 번거로움을 느껴 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예비군 근무가 끝나니 민방위 편입이 계속 되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끼면서도 민방위만 면제되면 상당히 홀가분하고 해방된 기분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할 때가 있었다.
이제 내년이면 민방위 면제라는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을 같기도 하다가, 어느 날 사무장으로부터 “스님 이제 민방위 면제 되었습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이지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어떤 기분을 가져보거나 내 인생의 여정에서 하향 길로 접어들었다거나 궤도를 이탈한 어떤 징후를 내 감정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항상 청년기 그대로 마냥 ‘방년 31세’라는 분위기만을 안고 살아왔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하는 신음소리가 내 귓전에 울려 퍼졌고, 그때까지의 내 삶에서 단 한번 처음으로 ‘내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하는 갑자기 무엇이 폭삭 내려앉는 전율을 경험했다.
그때까지 깊이 느끼지 못했던 여러 가지 기분에 깊이 빠져 서글픈 그런 감정을 삭이면서 생각을 돌이켜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당신도 이제 별 볼 일이 없으니 가서 사라질 준비나 잘하고 있으시오’하는 상당히 철학적인 질책을 주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의 분수령을 넘어버린 서글픈 감정을 강하게 한번 실감했다.
그런 저런 감정들이 사라지면서 돌이켜 보는 그때 내 생각의 결론은 ‘달갑던지, 말았던지 역시 그래도 오라. 오라.’ 하던 그 때가 정말 좋았구나! 하는 강한 애수와 후회스러움이 따라 붙었다. 그래도 그 시절의 향수에 깊이 집착함은 그 때는 내 능력을 믿어주고 가능성을 인정해주고 쓸모가 있기에 그들이 나를 불러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불러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은혜로운 사실이며 기쁜 환희였는가를 확인했고, 이제는 그들이 나에게서 능력을 인정할 수 없음과 가능성이 희박해 졌다는 사실을 통보해 왔음에 내 스스로 나를 버렸구나 하는 서글픈 고독감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몇 차례 민방위 근무를 마친 분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그때 나의 감정을 피력했더니 놀라운 사실은 그들 모두가 나와 비슷한 감정을 겪었다는 것이었다. 다만 표현을 안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동원 교육 때는 귀찮아하고 투덜대는 분들이나 그런 분위기를 더러 보아왔는데, 이제 면제되었다고 기뻐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음과 누구한테서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사실이 없는 침묵에서 ‘아 하! 역시 그들도 그랬구나’ 하는 연민만이 흘렀다.
그 후로 나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여러분들에게 그런 역량과 가능성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부르고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쁘게 응해 줄 것이며 자랑스런 긍지와 인내심을 잃지 말고 더욱 성실하게 봉사할 것을 당부하곤 한다.
자기에게 관심과 역량을 인정해 주는 부름에 거부감을 가지고 불만을 터뜨린다면 더 이상 말을 이어갈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경전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할 수 없는 것은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 여래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들이 관심만 가져준다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우리는 잘 해낼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과연 긍정적인 모습이며 그 기질이나 개성이 활달하고 바람직한 믿음이 깔리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살피고 평가해야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느 쪽이든 우리는 잘 처방해야 한다.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너무 긴 이야기에다 의외로 문제와 범위를 넓혀서 핵심이 빗나간 것 같은 기분이나 산만함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와 우리’ 라는 이 주인공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절대로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자 왕이 새벽에 굴속에서 나와 몸을 다듬고 입을 벌리고 사방을 살피면서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열한 가지 일을 하기 위함이라 했다.
첫째는 사자가 아니면서 사자 행세를 하는 무리를 부숴 버리는 것이요.
둘째는 몸에 있는 기운을 시험함이요.
셋째는 있는 곳을 깨끗이 하려는 것이요.
넷째는 새끼들로 하여금 있는 처소를 알게 하려는 것이요.
다섯째는 여러 이웃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이 없게 하려는 것이요.
여섯째는 자는 놈을 깨우려 함이요.
일곱째는 마음 놓은 짐승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려 함이요.
여덟째는 여러 짐승들로 하여금 와서 복종하게 하려는 것이요.
아홉째는 향기 내는 코끼리를 조복하려 함이요.
열째는 새끼들을 가르치는 것이요.
열한번째는 자기의 권속들을 장엄 하려는 것이다. (중략)
여우는 사자를 백 년 동안 따라 다녀도 사자후를 하지 못하는데, 사자의 새끼는 3년만 되어도 큰 사자처럼 사자후를 하느니라.[열반경]
사랑하는 딸들이여!
그리고 젊은 엄마들이여!
정말 생각 있는 엄마라면 이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도량석 소리 지나갔고 종성 소리도 사라져 갔고 범종 소리 크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니 법당에 가서 예불 드리며 나의 염원을 올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그리고 해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백의민족의 자손들이다.
그래서 그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기다린다는 사실을 숨겨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가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이나 사명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딸들이여!
어머니가 있는 나라는
인물이 계속 태어나고
다시 어머니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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