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하늘만큼 사랑해요
우리 송광사가 소재하는 순천시에서 17세의 한 소년가장이 생활고로 자살했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 새해 첫 주 신문보도에 실려 있어서 내 가슴도 통증으로 전이된 것 같다.
신문 기사 내용인 즉, 중학교를 중퇴한 그 소년은 동거중인 여자 친구와 한 살짜리 딸의 부양을 위해 온갖 막노동 등을 하다가 겨울이 되면서 일감이 없어지자 생활고를 비관해서 그 귀한 자신의 생명을 버렸다는 사실과 뒤이어 20세의 여자 친구도 부모님에게 딸의 양육을 부탁한다는 내용과 남자 친구가 보고 싶어 먼저 간다는 글을 남기고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시작은 어떻게 되어 파생됐던 가족들의 냉대와 버림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여러 가지 관습적 사회의식도 체면도 명예로운 가문의 위상을 추구하는 것 어느 하나 잘못된 가치관이나 현실은 분명 아니지만, 말 그대로 말똥에서 뒹군다해도 생명이라는 가치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해외입양천국”이라는 별명을 듣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내입양 상황도 입양 후 60퍼센트가 다시 파기되고 있으며 나중에 유산상속 과정에서 문제성이 적다는 이유로 딸들의 입양이 훨씬 더 많다는 취재기사도 같은 날 시청했다.

나는 35년이 넘도록 한 간호대학 불교 동아리 학생들과의 인연으로 병원정보를 비교적 많이 접하는 사람이다. 지금 출생 후 곧 바로 입양되는 어린이들은 여고생들이 출산한 아이들이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출산 임박한 여학생들이 보건소 등 국가지정 의료기관에 찾아오면 잘 보호하여 무료로 출산을 봐 준다는 사실은 낙태 예방을 위해서도 참 다행한 일이라 고마워했다.
그러면서도 씁쓸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음은 예를 들면 어느 보호자가 동행한 것도 아니고 혼자 와서는 출산 후 훌쩍 학교로 복귀한 학생이 부모님에게 친구 집에 몇 일 있다가 왔다고 말하면 만사형통이 되는 이 무심한 현실들을 우리들이 무한정 이런 식으로 이어 가야 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곰곰히 씹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현실과 운명을 받아들인 부모들의 보살핌에 의해 학교로 복귀해서 정상적인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고등학생 아빠’라는 별명이 붙은 가정들의 경우는 나로썬 감사하다는 표현으로 응답하고 싶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지만 줄이고 내가 잘 알고 있는 한 신도님 가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우리가 함께 깊이 한 번 생각해 보자는 하소연을 드린다.
내가 입산 몇 년 후 일찍부터 알게 된 신도님 가정이다.
그래서 그분들의 장남 장녀도 자연스럽게 출생 때부터 성장을 지켜 보아왔다.
그 남매가 고등학생 때 일이다. 그 어머님께서 그 무렵은 우리 송광사엘 자주 오시는 편이었고 그때마다 딸은 엄마를 따라 절에 오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에는 당시 고등학교 일학년인 딸과 함께 아기를 안은 여고생 같은 아주 앳된 새댁이 매번 같이 왔었다.  
아기를 안고 있어서 나는 나의 개념으로 새댁이라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렇게 몇 번 왔던 어느 날 대웅전 앞마당에서 그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그 새댁을 보고 ‘여기는 누구요?’ 라고 물었더니.
그 신도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면서 ‘스님, 우리 며느리요’ 라고 대답하기에,
‘며느리 ? (이 집 아들은 고3인데, 조카며느리 아니면…)’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누구 집 며느리인데요?’라고 다시 물으니 그 분이 더 크게 웃으시면서,
‘스님, 우리 며느리라니까요.’ 하기에, 내가 대뜸 묻는 말이,
‘그럼 아들놈이 바람났단 말이요?’ 라고 되물었더니.
‘그래요. 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하기에,
그 때서야 상황을 판단하고서
‘그 자식이 일찍도 눈을 떴네. 그럼 학교는 다니고 있어요?’ 다시 물었더니,
‘학교 요? 그냥 그런 사정이 있어요.’ 하면서 들려주는 내용인즉.
그 신도님은 처음 며느리를 데리고 절에 오셨을 때 나를 만나 내가 여기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우리 며느리’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스님이 상황을 알고 침묵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나는 그 집안 새댁인가보다 하는 보편적 생각으로 무심히 넘어갔던 것이다.
내성적 성격이면서 착하기도 했던 그 분의 아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가출을 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역시 가출한 여고생 여자 친구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번 깊이 새겨볼 일이 있다.
보편적 상황으로 봤을 때 어느 부모님인들 이런 상황에서 강한 체면의식과 더불어 이웃을 의식 안할 수 있을 것이며 마음이 편안할 리가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연히 상정되는 과정이다.
이 내외분은 상황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먼저 현실을 수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야단치거나 아들의 여자 친구를 내 쫓을 수가 없었고 보호하고 데리고 있으면서 스스로 귀가하도록 달래려 했던 것이다. 당장 내 쫓고 나면 자기 아들도 그 딸도 또 다시 거리를 방황하는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현실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든 어느 날 그 예비 며느리가 같은 방을 쓰던 한 살 아래의 시누이에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고백했다.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아들은 여자 친구가 임신이 되니 두려움과 다급한 마음이 생겨 엄마 아빠에게로 돌아왔던 것이다.
난감해진 이 어머니는 그 다음 날 바로 그 딸을 데리고 산부인과로 직행했고 접수를 하고서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정신을 가다듬게 된 것이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닌가? 부처님 제자로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생명을 죽이다니 이것은 안 돼, 하는 강한 참괴심이 일어나면서 망서림 없이 그 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애야, 안 되겠다. 그냥 집으로 가자.’”
이렇게 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고 해가 바뀌어 이듬해 봄 그 손자가 태어난 후는 평소보다 더 자주 절에 오셨던 것이다.
그 아들은 겨우 사정을 해서 졸업장은 받았고 군 복무를 마치고서는 기능을 익혀서 사회생활을 잘 하면서 가족을 잘 보살피는 당당한 가장이 되었고 그 며느리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 빛을 보게 된 그 손자 이야기를 좀 해야 이 글의 마무리가 되겠다.

할머니이기 이전에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그 손자 녀석이 건강하게 태어나기도 했지만 인물도 잘 생긴 놈이 아주 활달하고 똑똑하기도 하고 할머니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할머니 역시 손자가 그저 사랑스러워서 못 견디는 완전한 기쁨조가 되어 화목한 환경이 더 해 갔고 두고두고 생명을 구하는 일이 어떤 행복인가를 체감하면서 살아가는 가정이 되었다.

그 손자가 금년에 중학생이 된다.  

그 손자를 볼 때 마다 문득 한번 씩 그 할머니 가슴을 내리치는 충동적인 파열음은 “내가 그 때 저 애를 낙태시켜 버렸다면 ……… ? ! 나는 과연 ………아유 ! 저 복덩이 ………” 하는 강한 참회심이 요동친다고 한다.

우리 모두 항상 건강하고
활달한 나날을 살아가는 삶이되기를 기원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임진년을 시작하면서    
                            
월조헌 뜰악에 서서   영  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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